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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특별 기고> 죽음에 대한 성찰

고송 웰라이프 문화원/부천 웰다잉 문화 연구원장 송계순

장상옥 | 기사입력 2021/07/27 [10:26]

<웰다잉 특별 기고> 죽음에 대한 성찰

고송 웰라이프 문화원/부천 웰다잉 문화 연구원장 송계순

장상옥 | 입력 : 2021/07/27 [10:26]

 

▲ 부천웰다잉문화 연구원장 송계순 목사



한국외대 이창복 명예교수의 죽음에 대한 이런 지론을 펼쳤다. 

 

"죽음은 ‘종말을 위한 존재’라고 했다. 슬프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접어버리고, 억제됐던 욕구를 마음껏 풀어 재치고 자유롭고 멋있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자유는 금세 방종으로, 멋은 추함으로 바뀌면서 내 삶의 모습을 바꿔 놓았다. 

 

모아뒀던 자료들의 먼지를 털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문학과 음악의 황홀한 만남』이 출간됐다. 『고통의 해석』이란 책이 햇빛을 봤다. 아직도 출산의 산고를 견딜 수 있으니 나는 가임 여성이 지닌 젊음과 창조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번엔‘죽음’이 진지한 테마로 다가온다. 생명은 죽음과 함께 잉태한다. 살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연구는 삶에 대한 연구일 수 밖에 없다. 문학, 예술은 물론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의학을 포괄하는 학문의 전역을 기웃거려야 한다. 

 

맨손톱으로 바위를 긁는 기분이다. 나에게 시간은 짧고 할 일은 많다. 몇 년은 보장받은 기분이니 신바람이 나고 열정이 치솟는다. 허상이라 해도 좋으니 새로운 죽음의 문화를 세우는데 벽돌 하나를 놓고 싶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죽음이 삶과 똑같은 실존의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그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해 말하길 꺼려 한다. 

 

그리고 자신과의 필연적 관계를 외면하려 한다. 만일 인간 모두가 자신의 종말을 미리 안다면, 세상은 곧 대혼란의 비극적 참상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런즉 죽음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앞서 생각하고 준비하라는 교훈이다. 

 

김수환 추기경의“태어나는 자는 울지만 주위 사람들은 웃고, 죽어가는 자는 웃지만 주위 사람들은 울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죽음을 기억하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울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죽음의 문화가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

 

죽음을 성찰하라… 삶이 더 뚜렷하게 보일 테니‘팔십을 넘은 지금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아니 죽음에 이르는 길이 더 무섭다. 내 삶이 죽음을 맞이하기에 여전히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살 만큼 살았으니 두렵지 않다는 이들도 있으나 진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누구나 알면서도 평소 생각하지 않는 진실은 삶 없이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 없이 삶은 없다는 것 인간은 죽어가면서 삶을 새롭게 발견한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는 이들이 많다. 진구렁에서 뒹굴었을망정 삶이 참 아름다웠노라고. 나의 나날들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았어야 했다고.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을 보다 성숙하게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죽음을 노래한 불멸의 명작’이라는 부제를 지닌 책에서도 기독교 성서를 근거로 실낙원 이후에 신과 인간, 삶과 죽음의 상호 작용 관계가 심오한 문제로 나타난다고 봤다. 신학은 삶이 신의 선물이고 죽음은 극복해야 할 인류의 적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죽기 때문에 부활한다는 종교적 희망과 내세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다. 철학은 삶과 죽음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며 삶의 평온을 주고 죽음의 공포를 없애준다. 문학은 추상적이고 무서운 죽음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형상화해서 우리로 하여금 삶 속에서 간접 체험하도록 이끈다. 

 

죽음은 삶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비극적이지만 예술작품에서 형상화될 때 신비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며 인생에 파멸과 몰락을 초래하기보다는 삶을 성숙하게 만드는, 이른바 니체가 말하는‘삶의 자극제(Stimulans des Lebens)’로 작용한다. 자신을 돌아보며“인간의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여정으로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귀중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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