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은 고려시대의 사랑방에서 유래되기 시작했고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볼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다. 그 다시 보통 양반들은 누각에서 서민들은 정자에서 여가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노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해서 노인정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사랑방에서는 주로 문중 일을 논의하고 농사 관련 신변잡사에 관한 이야기와 생활의 정보교환이 주로 이루어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도시계획사업법이 본격화되면서 정부에서 경로당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1997년 개정주택 개발법이 경로당 설치를 의무화 하였다.
우리사회는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불과 17년 만인 2017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 2023년 6월 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930여만 명 전체 인구의 18.2%를 넘어섰다. 향후 2년 2025년에는 노인인구 비중이 20%, 1,000만명을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여가 시설의 97%를 차지하는 경로당도 지금까지의 단순 여가 복지시설에서 복합적 기능을 겸비한 노인복지시설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따라서 늘어난 노인복지 수요에 맞춰 어르신들이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경로당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와는 달리 현재 우리나라의 경로당은 운영 설계나 방법이 20-3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자칫 경로당의 존재 가치를 의심받을 여지도 있다고 본다. 어떤 것이든 변화하지 않으면 소멸될 수밖에 없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멸하는 것을 그동안 우리는 많이 보았다.
우리나라 인구의 평균수명은 1970년 62세, 1980년 67세, 1990년 71세였다가 2000년에 들어서서 76세가 되었으며 현재는 83세가 조금 넘는 수치다. 아울러 우리나라 사람들의 최빈사망 년령은 87세에 이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보통 60세를 전, 후로 사회적 은퇴를 가정할 때 우리는 은퇴 후 3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산업화사회의 주역이었던 노인들이 그동안 60여년을 살아오면서 삶의 무기였고 기술이었던 생활 속의 지식을 모두 소진하고 이제 남은 것이 없다. 쉽게 말해 밑천이 다 드러나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이야기다. 노인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위치를 잃어가는 원인, 즉 역할과 존재감의 상실이 이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노인들이 모든 면에서 새로 배우지 않으면 가정과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경로당이 변해야한다. 2022년말 현재 68,000여개의 경로당은 그동안 단순한 여가시설, 쉼터로 운영되어 왔으나 앞으로는 좀더 포괄적이고 전문성을 겸비한 거점센터로 활용되어야한다. 경로당은 점차 배움의 장소, 휴식, 건강관리, 봉사 장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인들이 재교육을 받을 마땅한 공간이나 시설로 경로당을 적극 활용 해야 한다. 대안학교의 기능을 겸비한 거점경로당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인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원인 중의 하나가 정보의 소외, 예를 들어 SNS(Social Network Service)와 컴퓨터 사용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노인들이 이런 것을 제대로 배울 곳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로당의 프로그램구성에 자연스럽게 접근성이 용이한 SNS와 컴퓨터 교육과정이 필수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행정복지센터 강당, 거점경로당 활용 가능) 별도의 교육 System을 만들 것 없이 나름대로 다양한 교육 혜택을 받았던 베이비부머세대들을 경로당에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소정의 교육을 거쳐 경로당이나 노인복지시설의 임원이나 강사들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들은 교육 정도 수준이 높아 SNS, 컴퓨터 교육뿐 아니라 웰에이징(Well Aging), 웰다잉(Well Dying)교육 등 생활에 필요한 인문학교육이 가능하여 당사자 중심의 문제해결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도 충분히 이어질 수 있어 바람직하다고 본다. 베이비부머들(1955-1963년생)의 인구는 715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직업도 다양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무한한 잠재력을 제 3의 생산적 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들은 양질의 소중한 사회적 자본이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부천시의 경로당복지서포터즈 운영사업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복지서포터즈란 다양한 사회 경험과 각 분야에서 일하던 50-60대의 신중년 인적자원을 활용해 프로그램 취약 경로당에 파견하여 SNS교육 등 각자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능을 프로그램화하여 경로당회원들에게 제공하는 것인데 경로당회원들이 만족도가 높고 신중년 당사자들에게도 새로운 사회참여의 기회로 활용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
노인들의 4대 고통이 병고, 빈고, 무위고, 고독고라고 한다. 얼마 전 경로당을 방문하였다가 전에 간호사로 일했던 경로당회장 한 분이 회원들의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여 자체적으로 만든 건강수첩에 기록 해주는 것을 보았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는 경로당회원들이 과거 다양한 직업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회원들을 활용하여 기본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하다. 필자가 그동안 경로당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경로당회원을 교육받은 경로당 회장이 맡아 몇 달 동안 계속된 '또래 지지상담'을 통해 생활의 활력을 얻게 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한 감동적인 사례가 있었다. 나이가 들고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두고 출근해야 하는 젊은 부부를 위해 경로당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그 어른을 모셔와 점심도 챙겨주고 같이 생활하시게 하다가 퇴근 시간에 맞춰 모셔다드려 아파트 내에서 경로당 어른들이 존경의 대상이 된 사례, 학교 방학을 이용하여 토요일 오전 지역 어린이들을 경로당에 초청하여 우리나라 전통 예절과 4자소학을 가르치고 선물을 주어 지역사회와의 벽을 허무는데 기여한 한문선생님 출신의 경로당회원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기회와 동기를 만들어 준다면 얼마든지 긍정적 이미지의 경로당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천시 소사지회에서 경로당회원들을 중심으로 1.2.3세대 어울림 그라운드골프대회, 한궁대회를 주최하고 경로당에서 ‘아파트 내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전개하여 지역사회에서 노인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사례는 우리 노인들도 얼마든지 가정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참 재미있는 공간』이라는 책에서 '제 3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곳은 집도 사무실도 아닌 동네 카페, 쇼핑몰, 미용실 등을 의미하는데 현대인이 머무는 또 다른 공간을 말한다. 한국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었던 우리 노인들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였던 걱정과 근심, 스트레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장소로 경로당이 활용 되어야 한다. 이제 경로당은 노인들에게 아지트여야 한다. 필요 이상의 격식과 치열한 경쟁이 없는 곳, 마음 놓고 배우고 말할 수 있는 곳, 자유가 있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경로당의 모습일 것이다.
필자 약력 이병민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전)도서출판 청운문화사 대표 사회복지사 현)부천시 소사지회 경로당관리부장 <저작권자 ⓒ 경기실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